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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 다반사

[요나스쿨]아프리카 차드에 희망을 세운 故 박용하


오늘 저녁에 방영된 SBS  희망TV를 시청하였어요.
화면에 나오는 박용하씨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였습니다.

화면을 보면서 마치 살아있는듯한 착각을.. 그러나 박용하씨의 친구인 박희순씨의 목메는 목소리..
눈가에 맺힌이슬을 보고는.. 금세 현실로 돌아 왔어요.

아프리카에선 한국 돈으로 140원이면 소아마비 예방접종이 되는데.. 과자 한 봉지 살수 없는 액수가 없어 접종을 못하여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지내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한달에 2만원이면 아이를 살릴수 있는데... 2만원이 없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박용하가 만난 자네트는 소아마비로 걷지를 못하였던 아이중에 한명...처음에 박용하씨에게 눈길조차 주지도 않던 자네트지만 진심을 알고는 마음에 문을 열고 친구가 됩니다박용하가 만난 자네트도 그 중에 한명...
처음에 박용하씨에게 눈길조차 주지도 않던 자네트지만 진심을 알고는 마음에 문을 열고 친구가 됩니다.

아프리카 차드에 있는 자네트를 만나고 돌아온지 일년..지금...
초롱이는 눈망울을 보며 다시 오마 하고 약속을 했던 박용하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를 대신하여 간.. 배우 박희순씨가 자네트를 만났습니다.

이 글은 SBS 희망TV를 보고 난 뒤에.. 박용하 방문기.. 그 이후의 이야기를
아프리카에 함께 동행하였던 굿네이버스의 관계자분의 자료를 받아 올리는 글입니다.



“저는 박용하입니다...박용하..반갑습니다”

故 박용하( 굿네이스 홍보대사)씨가 아프리카 차드에서 처음 만났던 소녀 자네트에게 던진 이 한마디는

가슴에 응어리가 맺힌 한 소녀의 마음에 추억으로 남아있었습니다.


 

뜨거운 흙바닥을 맨 다리로 기어 다녀야 했던 자네트는 혼자 힘으론 설 수 조차 없었습니다.
돌봐줄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자네트는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매일 밭에 나가야 합니다.
보살핌과 위로가 필요했던 소녀, 평생 안고 갈 장애와 의지할 곳 없는 외로움은 열네 살 소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슬픔의 한 가운데에서도 자네트가 웃을 수 있던 이유는
바로 그의 ‘꿈’ 이었습니다.
자네트에게는 의사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은 큰 꿈이 있습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외롭게 살던 소녀를 위해  故 박용하씨는 한 가지 결심을 했었습니다.
자네트의 두 다리가 장애에 갇혀 답답하게 지내지 않도록 자네트의 꿈이 주저앉지 않도록 날개를 달아주자고..
지형에 맞춘 특수 휠체어를 직접 조립해 자네트에게 보여주던 날, 자네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런 자네트를 일 년이 지난 9월, 고인을 사랑했던 그의 친구이자 배우인 박희순 씨가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낯선 손님의 방문에 어리둥절해하는 자네트...
인사 뒤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출입구를 향해 시선이 멈춰있던 소녀...
아마도 일 년 전,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어줬던
‘요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짧은 3일이었지만 소녀의 가슴 속 깊이 각인된 그 이름. 박 용 하.


박희순 씨는 고인과 자네트가 함께 같이 찍은 사진을 꺼내놓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프리카 차드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착한 친구가 있다고 차드에 도착하기 전,
고인에게 자네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박희순 씨.

“자네트...용하가.... 용하가.....”

차마 고인의 소식을 전하지 못해 말을 삼키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박희순 씨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하늘도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맑았던 하늘에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잘 안 들릴 정도로 거센 비가 계속해서 내렸고

고인의 소식을 다 전하고 난 뒤에는..드라마처럼 비가 그쳤습니다.



9월 18일, 요나스쿨의 개교식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배우 박희순 씨가 현판 다는 작업을 다 끝내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던 중,

현판 앞에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와  박희순 씨에게 건넸습니다.

박희순 씨와 동행한 박하선 씨는 마을 어르신께

“하늘에, 용하가 있으니까 비둘기를 날려도 되겠냐” 고 물어보았고,

마을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박희순 씨는 비둘기를 날렸고, 하늘을 향해 날개짓을 하던 그 비둘기는 갑자기 현판위로
날아가 그 위에 앉았습니다.
모두가 놀라고 신기해하던 중, 자원봉사자 한 분이 마을에서
고인이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故   박용하씨의 사진과 요나스쿨 설립 배경이 써져 있는 현판에
비둘기가 앉는 모습을 본 박희순씨는 그저 말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프리카 차드에 세워진 '요나스쿨'은 고 박용하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용하 대신에 감사와 축하를 듣는 것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런 환대와 축복을 용하가 받았어야 하는데.......“


유난히 박희순 씨의 눈에서 그리움과 추억이 가득한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일행들이 떠나려고 할 때,
현판에 앉았던 비둘기가 차량 본네트에 와
다시 앉았습니다....

아프리카 차드에 희망을 세운 故 박용하.. 그가 많이 그립습니다.
아프리카 차드에 희망을 세운 故 박용하.. 그가 많이 그립습니다...

 
저녁에 故 박용하님의 글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뉴스에 故 박용하님의 아버지가 소천하셨다는 뉴스가 올라오더군요.
만감이 교차되는 소식...힘든 투병끝에 운명을 달리하신..
故 박용하씨 아버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하는 아드님과 만나.. 이승에서 못다한 이야기 나누시길...
 



'요나스쿨'아프리카 차드에 희망을 세운 故 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