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여행 이야기

해학적인 목각품이 있는 제천의 박달재 목각공원~♬


지난주말에는  옆지기와 둘이서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섰어요.
가까운 충북 제천으로 계획을 잡고 아이가 등교를 시킨뒤에 충북제천으로 고고~ㅎㅎ



주말이지만., 이른시간에 집을 나서서 그런지 별로 막히지 않고 서울 톨게이트 도착!
톨게이트를 통과한 시간이 8시 24분~ㅎㅎ



날을 잘 잡은 듯..고속도로로 한가하였어요.

 

 
중간에 휴게소(치악 휴게소)에도 들려 잠시 쉬고~



서울서 경부고속도로(신갈)→ 영동고속도로(남원주) → 중앙고속도로(제천)



제천 돌게이트에 도착을 하니 10시 18분이네요.
서울 톨게이트에서 제천 톨게이트까지 걸린시간이 2시간이 조금 안걸렸네요.



①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제천I.C -> 충주방향 -> 봉양 -> 박달재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산척 -> 백운 -> 박달재
③ 청주, 조치원방향(38호선국도이용) -> 충주 -> 다릿재 -> 박달재


제천으로 가는 길을 그림으로 설명을 하자면 위와 같습니다.^^
위에 지도중에.. 박달재 자연휴양림(박달재 가족공원)을 먼저 가 보았어요.

 
예전에 새로운길이 없을때 불영계곡(울진)을 가기위에 넘나들던 그 고갯길이랍니다.
지금은 빠르고 새로운 길이 생겨서 박달재고개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맛짱처럼 예전의 추억을 가지신분이나.. 제천 10경중에 2경으로 지정이 되어 공원화가 되어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전설을 보고.. 휴식을 취하러 가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박달재는 제천10경중에 2경으로 치는 곳으로 산수가 수려한 자연휴양림이다.

예전에는 박달재라는 .. 문은 없었는데,
공원화가 되면서 만들어 진듯합니다.



굽이굽이 굽은 도로를 올라가면 박달재가 나온다.



박달재 가족공원과 휴게소가 있답니다.



박달재 고개 정상에 올라오면..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박달도령장승과 금봉낭자 장승
계단을올라가면 금봉낭자가 박달도령 애듯한 사랑을 간직한 성황당이 나온다.



[박달재의 유래 - 금봉낭자와 박달도령의 슬픈사랑이야기]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갈라놓은 험한 산을 박달재라 한다.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 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 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아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 새 가까워 졌고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 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 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던 박달은 결국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나보내고는 날마다 성황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자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와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쫓아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안았으나 박달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가족공원으로 조성이 된 박달재 공원이랍니다.

박달재광장 건너편에는 금봉낭자와 박달도령의 사연을 조각상으로 형상화 하여 표현을 하였답니다.



사랑과 이별



기다림



그리움

 


봄 - 박달연가
선비박달의 모습과 꽃잎형상, 가락지형사을 조형화하여 박달의 금봉을 향한 사랑의 마은을 은유적으로 표현함.

여름- 금봉연가
금봉낭자의 모습과 나뭇잎형상,
가락지 형상을 조형화하여 금봉의 박달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함



가을 - 굳은약속
박달과 금봉이 만난 사랑을 나느는 모습과 단풍잎 형상.
가락지 형상을 조형화 하여 박달재에 깃든 애듯한 사랑의 전설을 표현함.



겨울 - 천년의 사랑(장을봉 2008)

박달과 그봉이 손가락을 걸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모습과 흰눈 형상,
가락지 형상을 조형과하려 순수한 사랑의 영원한을 표현한 조각상



가족들과 쉴 수 있는 정자



지금은 아직 이르지만.. 날이 풀리면 물레방아에 시원한 물이 흐른다고 합니다.



박달도령과 금봉낭자동상

박달재의 원이름은 천둥산과 지등산의 영마루라는 뜻을 지닌 이등령이였으나 조선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과 이곳의 어여쁜 낭자 금봉의 애닮은 사랑의 전설이 회자되면서
박달재로 불리우게 되었다.



박달재 노래비

울고 넘는 박달재 가사 (작사 반야월/ 작곡 김교성/ 노래 박재홍)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가슴이 터지도록~~~~

구성진 노래가 귓가를 맴돈다.



애국지사 흉상



위열공 김취리장군(1172~1234)동상



역사전시관



해학적인 목각품이 있는 박달재 목각공원



박달재 휴게소에서는...제천을 대표하는 음식중인 손두부, 도토리묵밥등을 팔고 있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시간이라.. 다음 코스에서 먹기로~^^

제천지역의 청정 산간지대에서 자생하는 도토리를 주원료로 만든 도토리묵과 채 묵은 입맛을 돋우는 별미입니다.
도토리묵은 위와 장을 튼튼히 하고 혈액순환 개선, 중독치료, 피로숙취, 허약체질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주성분인 아연산은 우라늄, 중금속등을 99%이상 흡착시키며 도토리 1kg은 3.5t의 중금속 폐수를 정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려가는(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이정표예요.
제천 박달재, 서울을 넘나들던 옛길이라 적혀 있네요.

박달재고개는 해발 453미터!
산수가 수려하고 경관이 뛰어난 이고개는 박달재라 불리며,
동서로 봉양과 백운을 잇고 멀리는 제천과 충주를 연결한다.

박달재 가족공원의 주위는 나무가 많고 아름모를 들꽃의 향기와 산새들의 노랫소리로 가득한 이곳
새천년을 향한 길복에 제천시에서 경기, 대원 가족공원을 조성해주어 이재를 넘나드는 모든 차량의 안전을
소망하고 기원하는 뜻에서 세운 비(1999년 비문내용)

오랜만에 옛추억을 더듬어며 다녀온 즐거운 제천박달재로의 여행이였답니다.
박달재공원을 내려와 다음 코스인 의림지로 출발~^^

[참고] 별것이 다 있는, 제천역 5일장(재래장터) 

스크랩을 하시려면 --->해학적인 목각품이 있는 제천의 박달재 목각공원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들면 구독+해 주세요

다 보신후에 부담없이 가지고 가시고, '잘보았다'는 격려의 댓글과 추천 부탁드려요~!!
댓글까지 써 주시면 글을 올리는데 힘이 되는 에너지 충전 가득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요리하세요.